2013년 부산에서 열리게 된 WCC 총회 문제를 두고 한국교회가 갈등을 빚고 있다. WCC는 세계교회협의회이다. 세계의 교회가 하나되기를 갈망하는 교회들의 협의체이다. 그런데 이 협의체가 오히려 교파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현상을 또 볼 수 있을까? 교회 연합운동체가 교회 갈등유발의 진원지가 된다면,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WCC 총회개최를 두고 벌이는 논쟁을 바라보노라면, '세계속의 한국',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 국가'라는 세간의 명성과는 달리 한국교회가 여전히 1950년대식 분열주의 사고에 매여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장래를 위하여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특히 공연히 논란에 빠져들고 있는 고신 총회가 과연 이 사태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현재의 논쟁의 부질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서 WCC의 정체성이나 신학 문제등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필자는 여기서 다시 WCC의 정체성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물론 앞으로 필요하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현재는 그럴 이유가 없어보인다. 다만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논쟁 발생의 메카니즘에 관한 것과 이 논쟁에서의 고신의 역할에 관한 것으로 고신총회는 더 이상 어리석은 논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현재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1. 논쟁 제기의 비논리성
   WCC총회가 왜 이 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왜 보수교단들은 기독교국제기구의 총회개최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것일까? 공기관이 하는 일에는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교회가 남의 집회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늘 정당한 일이라면 모든 집회에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교회들은 불교계의 모임에 반대의사를 표현하는가? 한국의 보수교단들은 통일교나 신천지, 박무수 등의 집회에 반대를 천명하며 이런 식의 논쟁을 벌이는가? 근본적으로 교회가 다른 교회의 일에 대하여 반대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마치 한나라당에서 친이 친박의 계파싸움을 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어느 누가 그 일을 옳다할 것인가? 나와 동일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는 논법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다른교회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몰라도 굳ㅇ디 반대운동을 하는 것은 전혀 논리성이 없는 일이다.

2. 논쟁제기의 비합리성
   WCC에는 장로교 통합, 감리교, 기장, 성공회 등이 가입되어 있다. 지금 WCC를 반대한다는 것은 곧 이들 교단들을 반대하는 셈이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 교단들이 원하는 행사를 반대하는가? 이 교단들이 이단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교단마다 생성의 역사와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신학적 강조점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 교단들이 공교회성을 갖지 못했거나 비성경적이거나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모든 지역에 지역교회를 세우고 활동하고 있는 역사가 있는 교단들의 활동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이들 모든 교단보다 뒤늦게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이다. 어떻게 후발주자들이 이미 세워져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해 온 교회들을 부정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논쟁을 제기하는 자체가 전혀 합리성이 없다.

3. 합동측과 통합측의 정통성 시비에 공연히 참여하는 고신의 무목적성
   솔직하게 말해 예장 합동이 중심이 되어 WCC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합동과 통합의 정통성 시비에 고신이 공연히 말려들 이유가 없다. 도대체 왜 고신의 지도부가 WCC총회 논쟁에 휘말려 드는 지 알 수가 없다. 합동과 통합은 역사적으로 분리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열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파벌 싸움에 박형용박사의 '3천만환' 사건은 보수파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하였다. 3천만환이라는 거액을 신학교 부지를 불하받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로비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가 자금을 날려버리는 일이 발생하자 갈등이 폭발하였고, 결국 분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일로 분열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였고 결국 WCC와의 관계 문제를 끌여들여 분열을 정당화하였다.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할 '신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어 합동측이 공연히 남의 집회에 시비를 거는 일에 왜 고신의 지도부가 함께 거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합동이나 통합 두 교단 모두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신사참배에 반대한 고신측 인사들을 총회에서 배제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합동이나 통합 모두 고신의 인사들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무런 역사적인 관계도 없는 WCC총회 여부에 대하여 그렇게 열을 내고 거품을 품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통합 감리교 성공회 등 다른 교단들의 모임이나 활동에 대하여 언제 반대하거나 열을 낸 적이 있는가? 왜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일에 굳이 나서서 교회간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려 하는가? 왜 합동원칙을 어겨 관계를 단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굳이 나서서 합동측의 둘러리를 서는 데 그렇게 열심인가? 이것은 고신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이런 반대운동을 통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4. 절차를 어기는 비합법성
    WCC 총회에 대하여 총회가 어떤 태도를 결정한 적이 없다. 다만 대책에 대한 연구를 맡겼을 뿐이다. 그런데 왜 총회가 열리기도 전에 마음대로 WCC 총회 반대운동에 참석하여 활동하는가? 그것은 총회의 질서를 어기는 일이다. 위원 몇사람, 총회 임원 몇몇의 의견이 교단 전체의 의사가 될 수 없다. 어떤 일도 절차를 어기면 모든 행동이 무효가 된다. 민주주의는 절차 민주주의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표연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누구든지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WCC에 관련된 논의에 마치 자신이 교단의 대표성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5. 성경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우리 교회의 절대적 행동강령은 성경중심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명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고 성경은 말한다. 명확한 진리문제가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WCC가 총회를 부산에서 여는 것이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WCC의 존재가 만약 진리문제라면, 지금까지 우리교단은 그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WCC총회에 관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관여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가입여부를 논한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대회를 여는 것은 그들의 결정이요 그들의 주권에 속한 일이다. 남의 일에 대하여 갑론을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결코 그런 논의가 한국교회 전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 지금 고신교회안에 있는 장로교 통합, 감리교 출신 성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WCC찬반여부를 묻기라도 할 것인가?

교회는 하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신학도 신조도 별로 다르지 않다. 통일한국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헌신해야 하는 우리가 교회들의 연합에 대하여 비관적이고 파괴적으로 대한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리고 통일한국이 되면 우리가 설자리도 없을 것이다.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운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삼가 유아독존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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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4 15:10 2010/07/14 15:10

신년하례회 유감

고신총회 | 2010/01/16 17:12 | 이성구
해마다 새해 첫달에는 신년하례회라는 행사가 줄을 잇는다. 우리 교단도 예외가 아니다.
교계신문을 보라. 줄줄이 곳곳에서 신년하례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여러 '지도자들'은 아마도 신년하례회를 두차례 이상 참석해야 할 것 같다.
각 노회, 혹은 지역노회 연합으로 신년하례회를 가지고 있는데다
전국장로회 연합회가 신년하례회를 다시 열고 있다.

오랫동안 이 모임들이 진행되어 왔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아 하던 방식대로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 금년에 처음으로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눈에 띄는 점도 있고 간과할 수 없는 점들을 발견하게 되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1. 중첩된 행사
    교회는 복음전도가 최우선이고 교회의 설립이 가장 절실한 과제다. 그런데 신년에 인사하는 일에 노회별, 총회별로 두번씩이나 시간을 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사라는 것도 정말 형식적이어서 전혀 인사가 되지 않는다. 과연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2. 과다한 스케쥴
   한 번의 모임에서 예배, 수많은 기관장의 인사, 강의, 식사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니 식사시작시간이 오후 1시 반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인사모임이 이렇게 길고 무거워야 하는가?

3. 참가대상의 모호
   교단 지도자 신년하례회....누가 지도자인가? 노회를 비롯한 기구의 장이 되면 지도자인가? 어떤 목사, 어떤 장로가 지도자며, 혹은 지도자가 아닌가? 이상한 잣대가 필요해진다.

4. 신년하례회와 교회력
   신년을 맞아 축하하는 모임을 갖는 것이 과연 교회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맞아도 노회, 총회가 축하인사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데, 신년은 유독 그래야 할 무슨 이유가 있는가? 너무 세속적이지 않은가?

5. 과다한 경비
   신년하례회는 먹어야 한다. 호텔서 한끼 식사를 하려면 4,5만원의 돈이 들 것이다. 500명이면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의 돈이 들어야 한다. 그외 경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개척교회 두곳이상의 지원금이 밥 한끼로 날아간다. 물론 먹을 때가 있다. 그러나 선교센터 짓는다고 애를 쓰는 금년에 굳이 그래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해쯤은 아주 소박하게 모이고 돈은 모아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6. 합동측과 통합측과의 비교
   합동측은 교단 회관내의 여전도회관에서 신년하례회를 가졌고, 통합측은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소강당에서 모였다. 한국에서 가장 큰 대형교단이 그렇게 소박하게 신년하례회를 열었다고 하면 한국 절제운동의 선두주자인 송상석 목사의 전통을 가진 우리 교단은 생각좀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7. 하례회 주관의 문제
    우리 교단은 전통적으로 전국장로회가 주관하여 이 모임을 갖는다. 그러나 합동 통합은 총회가 주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모임의 주관은 장로회가 하지만 경비는 대부분 교회가 소위 광고비로 지불한다. 교회가 교회안에서 교회를 대상으로 광고한다는 것도 정말 우스운 일인데, 그렇더라도 교회가 경비를 지불할 바에야 총회가 주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8. 내용의 문제
   신년하례회를 개최하고 지도자를 모셨다고 하면, 인사하는 일에 인정된 '어른'을 대접하는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각 기관장들이 연설로 인사하고 인사를 받았다면, 교회의 원로들을 앞으로 초치해 그저 함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역대의 총회장, 이사장 등 원로들이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른 대접을 않는 것은 '센머리 앞에 일어서는' 성경적 원리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9. 제안
   나는 우리 교회가 신년 하례회가 아니라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성탄축하잔치'나 '부활절 축하파티'를 여는 것이 훨씬 바람직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하든 그리스도 중심으로 영위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교회들이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는 아름다운 파티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지도자들이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순히 신년을 축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로 인한 새로운 삶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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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6 17:12 2010/01/16 17:12

총장 선출, 이것이 문제다!

분류없음 | 2010/01/07 12:50 | 이성구

고신대학교 총장이 수개월 째 공석중이다. 이사회가 지난해 8월부터 후임자 선출에 들어갔지만 해를 넘겨서도 계속 실패하고 있다.

총장 선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는 그 상황을 알 수 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의 개입이 있었다 하고, 학교 내부로부터 조직적인 반대운동도 있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지적된 적은 없다. 이쯤에서 총장 선출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1. 이사회의 문제점
   (1) 책임소재/ 총장 선출은 이사회가 절대권한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총장을 선출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사회에 있다고 해야 한다. 이사회는 전임총장의 임기가 끝나기전 후임 총장을 선출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구체적으로 학교와 교회 앞에 사과해야 한다.

  (2) 총회와의 관계 모호/ 이사회 구성은 총회 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인물, 교수평의회가 추천하는 인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에는 총회가 직접 이사를 선출했으나 관건이사 체제 이후 교육법과의 상치등을 이유로 구성방법이 바뀌었다. 따라서 이사들은 총회 전체에 대하여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이사들이 총회를 알지도 못하고 또한 총회의 요구를 알 필요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추천위원은 총회 임원들로 구성되어 한 해만 지나면 추천위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이유가 없어져버린다. 총회 속에 있으나 총회와 별 상관이 없는 이사회. 지금 총회는 시급하게 이사회와 총회와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3) 권한과 책임의 균형 상실/ 대학, 병원, 신학대학원의 인사와 재정에 있어 이사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러나 이사들이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는지는 불명하다. 보편적으로 학교 이사는 학교 운영비용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이사회는 학교에 매년 일정액의 출연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이사들이 회의비를 받기는 하겠지만 출연금을 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적어도 학교 기관의 이사가 되려면 개인이든 이사개인이 속한 교회든 해마다 일정액의 지원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법인에 대한 책임의식도 강화될 것이고 권한 행사도 신중할 것이다. 지금처럼 무임승차는 곤란해 보인다.  

 (4) 구성인원 문제/ 이전의 15명 이사회가 현재는 1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4명이 반대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비중이 너무 큰 구조로 되어 있다. 아마도 회의의 효율성을 위하여 적은 숫자로 구성하도록 했겠지만 극 소수가 반대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구조는 곤란하다. 이사회 구성인원에 관한 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5) 자격의 적절성/ 현재의 이사들은 앞서 지적한대로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받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어, 과연 그들이 총회를 대표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평소에 전혀 교단이나 총회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추천된 경우도 있어 현장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의 이야기에 함몰될 위험이 매우 농후해 보이기도 한다.

 (6) 총장선출의 시기 선정 오류/ 적어도 위기에 처한 대학의 형편을 고려할 때 차기 총장은 임기가 끝나기 전 60일 전에는 선출이 완료되어야 차기행정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09년 9월 30일에 임기가 끝나는 고신대 총장에 대한 선거는 8월 28일에야 1차 투표를 실시했다.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서도 총장 연령을 바꾸는 문제를 투표중에 결정하는 등, 허둥지둥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사회는 선거이전에 선거의 기본원칙부터 확립해야 할 것이다.

2. 총회의 문제점

  (1) 조직상의 책임/ 총회도 총장 선거의 지연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총회의 산하기관인 이사회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총장 선거는 2009년 총회가 열리기 전에 시작되었고 총회가 열리는 중에도 확정하지 못하였으며 상당한 잡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제에 문제점을 정리하여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사후에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을 하지 못하였다. 총회는 상설 총무가 존재하고 있는만큼, 총회가 당명하는 문제점을 파악하여 일년에 한 번 있는 총회에서 법적 보강을 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총회장 선거개입설의 문제/ 이번 총장 선거는 58회 총회장의 선거개입 논란으로 사태가 복잡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논란을 불러일으킨 당사자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면 주체적으로, 법적인 완전성을 갖추고, 그리고 분명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의 하나 허점이 드러나면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지난 2000년대 초와 같은 정치정국이었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다. 문제를 정치적으로 끌고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정도에서 그치기는 했지만 공인의 행동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자의든 타의든 총회의 선거개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미주 총회와의 관계 정립 필요/ 총장 선거를 계기로 미주총회와 우리 총회와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앞으로도 문제가 계속될 개연성도 적지 않다. 여러가지 불균형이 나타난다. 우리는 3간 강도사 훈련기간을 가지지만 미주총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신대원이 인정하는 신학대학원을 나와야 타교단가입도 가능하고, 특히 부목사 교육목사 협동목사등의 교단가입은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주에서는 가입자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하여 4수 5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우리 신대원에 입학할 수 없을 경우 수도 없이 많은 인가받은 적당한 대학원에서 쉽게 공부한 다음 편입하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많다. 현재 신대원은 여기에 대한 강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미주총회에는 얼마든지 가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편목에 실패하면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되고 한국으로 다시 역류해 들어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총회는 미주총회와 목사의 자질과 자격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대학의 문제점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대학의 교수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고, 정확하고 정당한 여론도 형성하지 못한채 질질 끌려다녔다. 복음병원 노동조함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생들도 애타게 호소하고 있으나 교수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대학 운영은 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대학의 교단은 교수들 아닌가?

 (1) 교수들의 관심부족/대학교수들은 관선이사체제에서는 직선제를 내세웠고 그렇게 시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장 선출에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설령 이사회가 전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공약발표회나 후보 검증 절차라도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면 훨씬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문제점을 제시하였다면 아름답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수들이 총장선출에 관심을 보인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2) 인신공격/ 교수사회가 총장선거를 앞두고 인신공격성 행보를 보인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동일한 캠퍼스에서 같은 교수로 살아온지가 20년이 넘는 총장 후보에게 자질론으로 접근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총회가 새삼스럽게 이미 총장을 역임한 후보의 자격에 시비를 건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면 평소에 꾸준하게 개별 건의하고 그래도 안되면 공개적으로 품위있게 토론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쌓아가야 할 것이다.

4. 후보들의 문제
  (1) 결단 부족/  총장 선거의 한복판에는 교수들이 있다. 사실 문제는 간단하다. 교수들이 -후보를 포함하여 - 이사회가 수십차례의 투표에도 총장을 선출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마지막, 모든 후보가 다 무대에서 사라질 판에 김성수 전 총장이 사퇴를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이사회를 뒤바꿀 수 있을만큼의 절차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또 일곱명을 두고 점수를 매겨 결정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이사들이 어떻게 무엇으로 교수를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지켜본 교수들이라고 한다면 이제 스스로 결단하여 총장선출을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학교나 교단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음이 가장 큰 문제이다.

 (2) 품격 유지/ 총장 후보들이 나타나면서 지저분한 이야기들이 끊어지지 않았다. 교수들은 평소에 자신들을 잘 관리하여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부족함이 들춰지는 게임이 아니라 장점이 강조되는 게임이 되도록 후보들이 자신의 품격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후보군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자질과 지도력을 보여 총장 선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의 이야기를 옆에서 하기는 쉽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총장의 선거가 교회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희화화 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껴 소망이 넘치는 대학을 만들며, 아름다운 선거문화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쏟아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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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7 12:50 2010/01/07 12:50